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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표 수필

토담처럼

 

                                           토담처럼

 

 

 

 

 

 지난 비가  고비였던 모양이다. 용케  버티는가 싶더니  허연 속살을 드러내놓고 길바닥에 쓰려져 있다. 군데군데 청태와 흙이 뒤범벅된 모습이 애잔하다. 용마루 마람으로 쓰인  기와는 조각이 났고  여기저기 물이 고였다.

 돌멩이를 이리저리 굴리시던 아버님이 생각난다. 커다란 돌을 이렇게도 놓아보고 저리도 놓아보고 잘 맞는가 싶다 했는데 또 다시 돌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셨다. 이렇게 맞춰보고  저렿게도 맞춰보고, 내 보기에는 아주 잘  어울리는 것임에도 그 무거운 돌을 다시 들었다  놓았다  하시면서 몇 날 며칠, 돌담을 쌓으셨다. 그렇게  정성을 들인 덕택에  한 세대가 훌쩍 지난 여태컷  잘 버텨온  것이다.  그렇게 주런하던 돌담, 아니 차라리 옹벽에 까까운 담도 나무 뿌리에는 어찌하지 못했다. 뒤란 대밭  대뿌리가  파고들고 감나무와 잡목에  뿌리를 내리더니 이내 돌들이 곳곳에서 툭툭 튀어나와 늘 위태로웠다.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가 되어 그 돌담 앞에 섰다.  큰 돌은 밑돌이 되어야 하고 큼직한 돌은 다음이다. 작은 돌은  맨 위다.  샘이 깊은 물이 마르지 않듯 지반이 튼튼해야   담이 오래간다.   어디 까지나 원칙일 뿐 정형화된 것은 없다.

 "이크!"

 나는 재빨리 손가락을 오무리며 감싸쥐었다. 하지만 허옇게 뼈까지 드러낸 검지로부터 보내오는 통증이 조금씩조금씩 뼛속까지  파고든다. 돌을 들썩이다 그만 돌  사이에 손가락이 낀 것이다. 잽싸게 뺏기 망정이지 아에 뭉개질뻔 한 것이다. 깨진  돌조각에도 내 흔적이 붉게  묻어있었다. 그 돌조각은 너무 날카로워 담을 쌓은데 쓸모가 없어보여 다른 곳에 버려두었다.

 벽돌처럼 생긴 돌은 하나도 없다. 바닷가 몽돌처럼 일사불란하게 둥근  것도 없다. 어쩜 이런 몽돌은 담을 쌓는데 영 젬병인지 모른다. 오히려 이렇게 울퉁불퉁 온통 모가 난 돌들이 서로의 깍지를 끼고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어깨동무를 하는 견고한 돌담이 된다.

 모난 돌이 정맞는다 했지만 우리네 인생사 모나지 않은 인생도 있으랴! 온작 세파에 둥실해질 뿐, 각기의 각을 지우기 위해 참선하고 기도하지만  또다시 각이 나오는 모난 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모나지 않는 것이 없다. 돌 또한 모나지 않는 돌이 없다. 그런 돌들을  이리지리 맞추어  담이 되도록  신 또한 우리 인간을 배열하고 주관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런 신처럼  돌들을 모자이크 하듯 간격을 맞추고 서로 아퀴지어 담을 쌓는다. 돌과 돌의 조화, 돌과 흙의 조화, 돌의 단단함과 흙의 유연함의 조화, 단단한 돌틈에 메워진 흙이 굳어 단단해질 때, 담은 비로소 담으로써 역할을 할 수 있다.

 (흙에다  지푸라기와 억새를 넣어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한다. 삶 또한  불순물과 이물질 같은 것들이 영혼을 더욱 맑고 단단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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