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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과 기행수필

운주사와 화순고인돌에서 돌을 읽다.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고인돌 닮은 천불천탑 타고 들불처럼 퍼진 민중의 불씨

입력 2022.08.10. 17:43이석희 기자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화순 운주사와 고인돌<끝>
운주사 석불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화순 운주사와 고인돌<끝>

◆같은 산을 등지고 살아가는 한 마을

화순 운주사와 화순 고인돌은 시오리 떨어진 산기슭에 어우러져 있다. 모산마을과 중장터는 같은 산을 등지고 살아가는 한 마을이나 마찬가지여서 고인돌을 만들었던 이나 그 후손들이 천불천탑을 쌓았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효산리에서 용강리까지 고인돌이 노둣돌처럼 놓여 있고, 운주사의 구층석탑을 포함한 많은 탑은 실제 고인돌 형태를 띠고 있다.

달 바위 고인돌

천 개의 탑과 부처 그리고 천여 기의 고인돌, 같이 바위와 돌을 자르고 쌓고 세운 그들의 꿈은 대저 무엇이었을까.

50여 년 전에 운주사를 찾는 이가 참 많았다. 황석영 작가의 장길산 배경이 되어서인지 80년대 많은 사람이 운주사 미륵불을 통해 답답한 세상의 탈출구를 찾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자 했다. 85년 전남 도청 앞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며 분신한 홍기일, 87년 미 제국주의를 비판하며 최후를 선택한 박선영 열사 모두 망월묘지에 잠든 이곳 태생이다. 이들 모두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부처 같은 이들이었다.

초파일이면 면민 모두가 모여 고단한 노동을 잠시 쉬고 용화 세상을 이룬 것처럼 운주사 설화는 이들의 입과 귀를 통해 들불처럼 퍼지고 옮겨져서 개인의 소망에서 나아가 지역의 꿈, 나라의 꿈으로 승화되어 민중들의 가슴에 불씨로 자라났다.

 

◆평온이 깃들길 기원하며 하나하나 조성

볍씨 하나조차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이 바위를 찍고 다듬어 천개의 탑과 천개의 부처를 만들려고 했을 때는 분명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천 개의 탑과 천 사람의 부처, 그들이 모여 산 중장터는 옛날의 화려함은 오간 데 없고, 여기저기 흩어진 천불처럼 그 많던 사람들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거닐던 거리엔 고양이 몇 마리만 어슬렁거린다. 용강 마을 노인정 기둥은 운주사 탑신을 주춧돌로 해서 아직도 여전하건마는 젊었을 적 힘깨나 썼던 청년들은 어느새 노인이 되어 낡아 있다. 고양이나 노인들이나 중장터에서는 모두 석탑이고 부처다. 운주사 석불을 영락없이 닮아, 말도 없고 조용하다.

운주사 석탑

용강에서 백사장터 고개를 넘으면 천태이고 등광이다. 박춘기 님은 운월리의 운월(雲月)을 운주사의 달로 해석한다. 운월 마을에 달이 뜨고, 그 달이 못에 비추니 지월(池月) 마을이란다. 천태(天台) 마을의 별이 빛나면 사람들은 천태산에 오르기 위해 등불을 들고 등광(燈光) 마을에 오른다는 것이다. 결국 원천(源泉) 마을에서 솟아난 샘물이 깨끗하게 정화된 정천(淨川) 마을을 흘러 푸른 못의 벽지(碧池) 마을에 담기는 용화세계인 곧 도량인 도장(道場) 마을을 앞에 펼쳐진다는 것이다.

운주사 석두

정말 도암 마을들은 운주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다. 운주사가 법화경 중에 견보탑품 중 한 장면이 석가모니불이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재현했든 그렇지 않았든지 그들이 사는 세상에 평화가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평온이 깃들길 기원하며 하나하나 조성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원천리 마을 앞 입석처럼 도암 어느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신앙이나 이념에 상관없이 돌을 세워 마을의 안녕과 자신들의 소망을 기원했다. 그런 돌들이 도암 곳곳에서 그 옛날 그들의 말을 전해주려는 듯 서 있다. 바람이 불 때면 돌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곳, 그곳이 도암이다.

 

◆세계 어디보다 숫자·규모에서 단연 으뜸

화순 고인돌군은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계곡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그곳을 걷노라면 마치 오래된 과거 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고인돌 군에 빠져든다. 언덕에 숲속에 바위를 뿌려놓은 듯 산재한 고인돌, 이쯤 되면 나도 손에 돌도끼를 들고 우왕 우왕 외치는 절로 선사시대 사람이 된다.

거지탑과 석불들

화순 고인돌군의 대표적인 특징은 엄청난 양과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무엇보다 좁은 지역 안에 596여 기가 밀집된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으며, 대신리에 있는 지석묘는 무게가 280여 톤, 효산리 고인돌은 100여 톤 이상으로 추정될 만큼 엄청나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이나 이곳 고인돌은 대한민국, 세계 어디보다 숫자와 규모 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도 마을 뒤에 인적이 끊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이어서 지금까지 잘 보전되었다.

'모아이 석상'이라고 불릴 만한 화순 고인돌을 보고 있노라면 혹여 그들이 제단으로 만들었든 당대 사람들의 무덤으로 또는 그 어떤 천상의 별자리로 만들었든 옛날 사람들은 돌로 이렇게 우리에게 유언 같은 말을 남기려 했던 것은 분명하다. 이 많은 바윗돌의 양이나 배치를 통해 전하려고 한 말은 무엇일까.

고인돌이 있는 곳과 운주사는 사실 하나의 산이다. 운월과 도장 마을 앞과 논밭에는 고인돌이 많다. 과거의 역사와 삶을 오늘날 사용하는 도곡, 도암이라는 행정구역명으로 나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두 곳의 돌도 사람도 같은 것이다. 실상 석질도 같고 산세도 비슷하며 심지어 두 곳 모두 채석장도 유사하기보다 같다.

감태바위 채석장

화가는 붓으로, 가수는 목소리로 연기자는 몸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는데, 어쩌면 이들은 돌로 자신의 무엇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마침 모산마을 입구에 최근 80년대 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외롭고 의롭게 민주주의를 변론했던 홍남순 변호사의 생가를 복원하였다. 당신이야말로 바위보다 더 단단한 독재에 맞서 싸운 진짜 바위 같은 사람, 바위 같은 고인돌이다. "못 살더라도 항상 깨끗하게 살아야 죽음에 이를 때에는 아무런 부끄럼 없이 역사 앞에 발을 뻗을 수 있다."라는 평소의 말씀처럼 당신은 지금 당신 마을 앞에 놓인 수많은 고인돌 중 하나로 두 발을 뻗고 있을 성싶다.

불회사 입구에 석장승을 볼 때마다 홍남순 변호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석장승은 무섭기보다 정겹다. 참 재밌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서 미소를 읽는다. 이렇게 늙고 싶다. 이 장승이야말로 이곳 사람들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한 것 아니겠는가.

 

◆바위 깎고 세우는 의지를 누가 말리겠는가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 그리고 효산리 고인돌이 바위에서 떼어내 돌이 되었듯이 또 그렇게 세월이 흐른 뒤, 모래처럼 부서질 것이다. 오랜 세월이 또 흐른 뒤, 누군가 그 조각들로 이루어진 사막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홍남순 변호사 생가

사막을 걸어본 적이 있다. 수많은 모래를 밟으며 걸었다. 그건 모래라고 하지만 수많은 돌조각, 아니 돌의 뼈를 밟고 지나갔다. 풍화되고 또 풍화된, 흘러내리고 또 흘러내려 흙이 빠진 바위의 조각들, 파편들만 남은 모래밭에 앉아서 이렇게 중얼거릴지 모른다. '바위에 세긴들, 또 단단한 돌에 새긴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에 씻기고 바람에 씻겨 기어이 이렇게 부서지고 없어져 버릴 것을.'

결국 삶이란 또 그렇게 돌처럼 바위처럼 묵묵히 꿈꾸듯 살다 부서지는구나. 그런데도 또 바위를 깎고 세우려는 의지를 누가 말리겠는가. 바위가 돌로 그리고 돌이 모래가 된 영겁을 읽고 해독한 일은 가능이나 할까. 박용수 시민전문기자 toamm@hanmail.net

박용수는 화순 운주사가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수필 쓰기만 고집해 왔다. ‘아버지의 배코’로 등단하여, 광주문학상, 화순문학상, 광주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광주동신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며, 작품으로 꿈꾸는 와불, 사팔뜨기의 사랑, 나를 사랑할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