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팔뜨기의 사랑
박 용 수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기를 수차례,
그녀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자 내 심장이 전파탐지기처럼 작동했다. 사뿐사뿐 아지랑이라도 밟고 오는 것 같은 그녀, 근접해오는 거리만큼 내 심장 간극도 빨라졌다. 단발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그녀가 담 아래 신작로를 지나는 찰나, 파열해버릴 듯 했던 심장 박동은 그녀의 뒷모습이 멀어지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아갔다.
우리 집은 신작로 가에 있었다. 고개를 길게 빼면 신작로 행인들이 내려다 보였다. 공부를 더 하느라 그랬는지, 문단속을 하느라 그랬는지 우등생인 그녀는 매번 늦었고, 혼자 하교를 했다. 그때마다 내 눈은 그녀를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였고, 시선은 신작로 돌아가는 끝 지점, 소나무가 그녀를 완전히 빨아들인 그 소실점에서 멈추었다.
소나무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지는 그녀, 그 소나무가 무척 미웠다. 그녀를 더 이상 볼 수 없으면 내 눈은 굶주린 배처럼 허기가 졌고, 나는 늘 시각적 포만을 꿈꾸었다.
예쁜 그녀, 게다가 깜찍하기까지 했다. 많은 여학생들이 같은 교복을 입었건만 그녀의 단아한 복장만 눈이 부셨다. 너무 예뻐서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얼굴, 해가 갈수록 그녀의 자태는 수려해졌고 미모는 더욱 눈이 부셨다.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우리의 시선은 온통 그녀에게 정지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였건마는 이상하리만큼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없었다.
아니, 아니! 한 명, 딱 한 명뿐이었다. 우린 그를 사팔뜨기라고 불렀다. 녀석은 눈만 사팔이가 아니었다. 공부도 못하고 행동도 굼뜨고 어눌하기까지 하였다. 여러 모로 우리들과 어울리지 못한 아이였다. 우리는 그가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을 핑계로 시비를 걸고 패기까지 하였다. 그때마다 그녀는 격하게 그의 편에 섰고, 화를 내는 그녀의 그런 모습은 더 매력적이었다.
사팔뜨기는 배달부, 편도 배달부였다. 우리가 편지나 쪽지를 그에게 주면 ,그는 그것을 그녀에게 전달했다. 수차례 편지와 쪽지가 그녀에게 배달되었지만 답장으로 돌아온 경우는 없었다. 그녀가 편지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팔뜨기의 눈동자는 늘 엉뚱한 방향을 향해 있었으므로 그도 당연히 본 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바람에 스치듯 그녀의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 동창회에 참석한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그녀가 온다는 소식에 동창회는 시작부터 떠들썩했다. 여태 오지 않던 녀석들이 온갖 치장을 하고 나타났다. 잠바 차림의 녀석들도 대부분 양복을 입었고, 나 역시 등산화 대신에 구두를 신었다.
술잔을 돌리면서도 녀석들은 사춘기 때 간직했던 풋사랑의 불씨를 그녀를 통해 일부러 되살리려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노래 가사는 그녀를 두고 한 말이었어.”
한 친구가 탄식조로 그녀를 끄집어냈다.
“캬아! 지금 같았으면 덥석 껴안아버렸을 것인데, 그땐 왜 바보 같았을까?”
다른 녀석이 잔을 비우며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린 서로 눈치만 봤어!”
그때, 학창시절 개구쟁이였던 친구가 끼어들었다.
“그 친구 중에 사팔뜨기라고 있었어, 그 녀석, 소식 아는 친구 있을까?”
“……”
“결혼이라도 했으면 다행이련만 어디서 죽지 않고 살기나 할까.”
그때, 뒷자리에서 누군가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좋은 자리에 하필 그 자식 이야기를 누가 꺼내.”
우린 금세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학창시절 그의 존재처럼 구석지에 처박아 버렸다. 그 빈틈은 다시 그녀 이야기로 채워졌고 그 위로 술과 추억이 넘쳐흘렀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누가 말했던가, 우린 그렇게 잔을 돌리면서, 당시 수업시간에 뜻조차 헤아리지 못했던 ‘청춘예찬’을 읊어댔다. 그래서 겨우 청춘의 의미를 가름할 것 같은 지천명에 이른 우리에게 청춘은 더욱 애절한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오늘 만날 수 있다니, 그녀의 등장은 소식만으로도 소멸해가는 우리 가슴에 새싹을 틔우는 봄 햇살이었다.
“똑 똑”
노크 소리에 요란하던 방안은 일순간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녀다.”
누군가 외치자 모두의 시선은 문을 향했다.
그 모습이 한 결 같이 가자미눈을 닮은, 모두가 사팔뜨기 같았다.
회색빛 정장이었다. 표정도 그다지 밝지 않았다. 어렸을 적 친구들의 시선을 붙잡았던 얼굴도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놀라운 일이지만 그녀의 이름으로 낯선 사람이 나타난 것 같았다. 군데군데서 친구들이 웅성거렸다.
간단히 인사를 한 그녀가 택한 자리는 내 옆이었다. 아니 그곳에 내가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예전처럼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는, 주름이 자글자글 잡히고, 머리카락도 윤기가 없으며 목소리조차 낭랑하지도 못한 그녀가 앉았다. 그리 예민했던 내 심장 시계도 그날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를 삼키곤 했던 신작로의 그 작은 소나무는 아름드리로 자랐건만 그토록 예뻤던 홍안은 초라하고 늙숙한 누옥으로 돌아와 있었다. 30년의 세월은 그러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녀석들은 언제 그녀에게 관심이라도 있었느냐는 듯 앞자리에 앉은 여자 친구들, 성형 미인들의 시선을 끌려고 갖은 아양을 떠느라 자리는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에야 그녀의 왼쪽 가슴에 달려있는 빛바랜 검은 리본이 들어왔다.
“웬 검정 리본?”
내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남편도 지금 여기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의 목소리 톤이 낮아졌다.
“그래, 그럼 네 남편이 우리 동창이란 말이니?”
옆에 있는 친구가 끼어들었다.
“광식이 몰라? 김 – 광 – 식!”
“누구라고?”
그녀가 호명을 거듭했지만, 친구들은 물론 나도 그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모르는 게 당연할지 몰라, 니들은 이름 대신에…… 사팔뜨기라고 했으니까.”
“사팔뜨기?”
그때야 주변 친구들이 경악을 했고, 나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놀랐다.
그의 죽음에 애도부터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우린 그와 그녀가 어떻게 결혼했을까 불가사의부터 풀고자 했다. 자리가 불편했을 것이다. 그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 배웅을 했다. 유년의 작은 소나무 한그루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멀어져가는 초라해진 미망인의 쓸쓸하고 어두운 그림자보다도 나를 괴롭힌 것은 내 시선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시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사팔뜨기도 그녀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그녀는 마음속에 또 하나의 명징한 눈을 간직하고 있었다. 비록 시력은 좋았지만 껍데기밖에 볼 수 없었던 우리와 달리, 사팔뜨기조차 끌어안을 수 있었던 따뜻한 눈, 겉이 아닌 내면을 볼 수 있는 눈, 마음을 읽는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고 한다. 까짓 한두 푼도 못되는 눈으로 세상의 거죽만 보던 눈, 껍데기만 보는 눈, 천 리 만 리를 볼 수 있는 눈으로 진정한 내면을 보지 못한 나야말로, 진짜 사팔뜨기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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