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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수필

기행문과 기행수필


에세이 21 기행수필 완성작.hwp

                                    현상을 넘어 본질로

                      -기행문과 기행수필에 대하여-

                                                                                                                                     박 용 수

 

 

열며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면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동적이었던 독서 마니아들이 이젠 너나없이 적극적인 여행 작가로 변신하고 있다. TV도 앞을 다투어 여행을 소재로 시청자들의 시선 붙잡기에 바쁘다. 이런 급변하는 시대에 어설픈 기행수필들도 대량 생산되면서 독자로부터 외면 받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수필가들은 어느 때보다 기행수필을 신중하게 써야 하고, 수필의 형식만 모방한 글을 쓰지 않도록 자성은 물론이거니와 바람직한 수필의 방향을 모색하는 치열한 작가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소재와 해석

여행자들은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고, 작가들은 좋은 소재를 찾기 위해 여행을 나선다. 좋은 작가는 여행 중 잡다한 글감을 찾기보다 하나의 좋은 글감이 있는 곳을 찾아 헤매는 늑대가 되어야 한다. 좋은 기행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핵심 소재 하나에만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소재의 현상적 의미를 수직적으로 파고들면, 그 의미의 밑바닥에 도사린 본질적 의미가 보인다. 그 의미를 개성적으로 해석하고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여 작가 자신만의 새로운 꽃대를 세워 지상 어디에도 없는 딱 하나의 꽃을 피워내는 일, 그게 기행수필로서 문학적 생명을 창조하는 작업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려면 소재의 껍질만 만지작거릴 것이 아니라 한겨울에도 알밤 한 톨에서 새싹을 보고 밤꽃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깊은 안목을 지녀야 한다. 잡다한 소재를 여정과 견문 그리고 감상을 중심으로 하는 백화점 식의 수평적인 글은 대량생산 시대 마구 찍어낸 벽돌처럼 문학적 가치와 생명력이 없다. 소재를 해석해 내는 독특한 시선과 창의적인 안목을 기르고, 자기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소재의 뼛속을 파고드는 수직적 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유와 구성

실용적 기행문은 주마간산 식으로 넓게만 보려 하지만, 문학적 기행수필은 여행 중 만난 의미한 풍경과 사상寫像에 가치 있는 의미를 부여하여 깊게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깊은 사유와 적절한 구성이다. 소재를 보는 시선 못지않게 구성에도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흔히 무형식의 글이라지만 형식이 없는 글이란 없다. 여정 견문 감상이라는 평면적인 틀로 글을 전개하다 보면 획일화된 기행문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기행수필은 시간을 순행과 역행을 오가고, 시적 상징과 운율을 활용하거나 소설의 입체적 구성을 차용하기도 하며, 희곡의 극적 요소와 시나리오의 장면 전환 등 다양한 구성기법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더 좋다. 자유롭게 쓰되 그 내용을 적합하게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형식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글의 내용을 잘 드러낼 수 있는 효과적인 구성일수록 독자에게 흥미와 공명 내지 강한 울림을 줄 수 있다. 평범한 내용일지라도 창의적 구성만으로 괜찮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내용과 본질

요즘 여행의 트렌드는 힐링이다. 그런데 몸은 가볍게 하면서 마음을 충만하게 채우기란 쉽지 않다. 몸을 비우려다 주제까지 신변잡기처럼 가벼워진다면 마음조차 허전하고 공허해진다. 기행문은 대개 외부의 풍경이나 타인을 중심으로 시선이 분산되어 가벼워지기 쉽다. 하나 좋은 기행수필은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여 마음의 힐링은 물론 영혼을 위무하고 의미를 가득 채워준다. 대체로 생과 사, 행과 불행과 같은 삶의 가치와 본질, 즉 인간의 근원적 문제에 대해 천착할 때, 깊이 있는 철학적 기행수필이 된다. 조용히 여행하는 중에 접한 사람들의 마음이나 심리상태 그리고 자신의 심리를 역동적으로 그려내는 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주제이다.

또 여행은 같음을 통해 공감하고 다름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 나라의 가치관과 신념, 토속적 신앙과 종교를 통해 그들의 내세나 선악 문제 등에 대한 천착도 삶의 의미를 넓히는 일이다. 기행 현장은 지나치면 풍경이지만 파고들면 삶과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삶을 기록인 역사를 통해 그들이 지향하는 방향성을 꿰뚫어 보는 것도 기행수필의 좋은 시선이 된다. 그 지역 사람들의 언어나 그들의 삶을 표현한 문학 역시 빈약한 영혼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 기행수필 쓰기의 한 방향이 될 수 있다. 문학, 역사학, 종교학, 심리학, 철학 등 이른바 인문학적 접근은 중량감을 더해줄 수 있는 기행수필의 좋은 알맹이이다.

 

표현과 문체

풍경 묘사에 치중하는 현상적인 글보다 여행지나 그곳 지역민들의 내면을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파헤쳐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기행문이 밖을 바라보는 여행이라면, 기행수필은 인간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소재를 깊게 보고, 인간의 내면과 관련된 묵직한 주제를 끌어내고 신선하게 구성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힘은 무엇보다 표현하는 데 발휘된다. 곧 뼈에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히는 형상화 작업은 글쓰기의 꽃이다. 아무리 좋은 주제와 골격일지라도 뼈대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내용이 날것으로 노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기행문은 아무래도 보고문과 같이 화려체와 만연체를 선호하고 과장과 영탄이 직접 드러난다. 또 여정과 견문 감상을 직접 노출 시켜야 선명해지지만, 기행수필은 은은한 울림이 있고 잔잔하게 내면을 흔드는 글이기에 문장은 짧게 쓰되 건조해서는 안 되며, 개성은 드러내되 노출시켜서도 아니 된다. 드러내기보다 감춤으로써 행간의 숨겨진 의미들에서 감칠맛이 난다. 무엇보다 따뜻한 시선과 포근한 마음으로 옷을 입힐 줄도 알아야 한다. 크게 떠드는 것보다 조용하게 속삭였을 때 상대가 마음을 여는 것처럼, 좋은 글은 주제나 여정을 드러내기라는 노출보다 감춤과 숨김으로써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준다. 기행문이 다양한 이야기와 화려한 풍경의 직설적 화법이라면 기행수필에는 무명옷일지라도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미소를 담을 줄 알아야 한다.

 

닫으며

여행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장르는 단연 수필이다. 그런데도 여행이 대세가 된 요즘은 양적 팽창과 더불어 여행만 있고, 오히려 수필은 빈곤해지고 있다. 이럴수록 육체의 이동과 사건의 나열이라는 여행 대신에 정신의 여행이자 삶의 내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행수필은 시대적 요구이다. 따라서 기행수필은 여정에서 얻은 소재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과 삶의 본질 즉 인간 문제에 천착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누구나 삶이라는 여행을 중단하지 않는 한 진행형인 것처럼, 인간의 총체적 삶을 탐색하는 수필도 진행형이다. 무엇보다 기행수필 역시 소재만을 기행 과정에서 선택했을 뿐 엄연히 수필이라는 본질을 벗어날 수 없다. 은하계를 부유하는 우주 쓰레기처럼 활자의 나열에 불과한 기행문을 쓸 것인가, 단 한 편이라도 궤도를 돌면서 독자에 회자될 수필을 쓸 것인가는 우리 시대 수필가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작품1]

 

울릉도 도착하여 점심 후에는 A코스 여행이다. 식후인지라 졸린데 경상도 가이드의 사투리 는 구수하지만 억양이 커서 짧은 단잠을 깨운다. (-중략-) 울릉도와 독도를 여행하면서 잃은 것도 있지만 얻고 터득한 것은 한가마 가득 담아야 될 듯싶다. 에메랄드 배려와 사랑은 남겨둔 채. 자연생태계와 인간관계가 하나라는 것, 절실히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우리 세대 미래세대 다함께 인간의 삶은 짧지만 인류의 생태계는 수천 년을 이어 오면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게 해준다. 독도를 뒤로하며 아쉬움을 남기고 떠난다. 독도는 우리가 지킨다, 뿌듯하다. 그래도 살아야제 하며 뒤도 안돌아 보고 생업에 열중하는 울릉도 사람들은 때론 삶에 지친 모습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1년 중 6개월 벌어서 살아야 하는 애환의 설움이 아닐까 한다. -000, 울릉도 이야기-

 

여정과 견문 감상에 따른 평범한 구성의 글이다. 분산된 소재, 현상에 머문 시선, 수평적 글의 전개와 직설적 어조는 상투적 결말을 맺을 수밖에 없다. 문장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으며 주제를 미학적으로 형상화하지도 못하고 있다. 소재에 대한 사유가 없고, 삶을 통찰하지 못하기에 알맹이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작품2]

“1달러!”

“1달러!”

새파란 바다가 넘실거리는 여름이었습니다. 제 아이는 발밑에 펼쳐진 바다를 신기한 듯 내려다보았습니다. 처음 타 보는 비행기.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3년간 알뜰살뜰 적금을 부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드디어 우리 가족은 세부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서둘러 리조트에 짐을 풀고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름다운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마냥 즐거운 추억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짧은 일정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돌아가기 전 우리는 시장에 잠시 들렀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망고를 골랐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우르르 몰려든 어린아이들. 저마다 목걸이를 높이 든 채 목이 찢어져라 외쳤습니다. 제 아이는 너무 놀라서 울어버렸습니다. 남편은 재빨리 아이를 안고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러자 아이들도 따라 올라왔습니다. 차 문에 매달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창문을 마구 두드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었습니다. 전 얼떨결에 들이미는 대로 목걸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갑에서 돈뭉치를 꺼내는 순간, 1달러만 쏙쏙 잽싸게 꺼내 가는 어린 손들을 보였습니다. 이제 볼일을 다 보았다는 듯 쏴아 빠져나가는 아이들. 다른 관광차를 향해 모두 뛰어가고 말았습니다. 차 안 가득 제 아이의 울음소리만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제 아이와 비슷한 또래. 어쩌면 한두 살 더 많아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습니다.

“1달러 안 받아요. 울지 말라고 주세요. 선물 줄게요. 아줌마 아이, 참 예뻐요. 부러워요!”

참 작고 가냘픈 손이었습니다. 그 손에 나무를 깎아 만든 빨간 물고기가 달랑달랑 매달린 목걸이가 보였습니다. 제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 소녀도 방긋 웃었습니다. 10달러를 소녀의 손에 살며시 쥐여 주었습니다. 세종대왕님도 한 장 더.

고맙구나. 너도 참 예쁘단다.”

차가 몹시 덜컹거리며 그 자리를 서둘러 떠났습니다. 맨발로 서서 손을 흔드는 어린 소녀. 어쩌면 한국말을 저리 잘 할까요? 얼마나 어릴 때부터 저 거리에서 목걸이를 팔았을까요? 가난 때문에 학교 대신 거리로 나온 어린아이들. 참 조숙해 보였습니다.

문득 꼬마 은영이가 떠올랐습니다. ‘가난이라는 말을 일찍 알아버린 은영이도 늘 듣던 말이었지요. 조숙한 아이라는 말은 가슴 깊이 박혀서 늘 슬펐습니다. 엄마도 없는 가난한 애라는 말이 마구 심장을 쑤셔 파버렸으니까요. 제 아이가 지금 누리는 모든 즐거움을 전 감히 상상도 못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만큼은 밝은 아이답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멀어지는 세부를 바라보았습니다. 자꾸만 귓가에 맴도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1달러!”

“1달러!”

여행은 제 아이에게 신나는 추억이 되었지만, 전 눈물만 범벅이 되어 버렸습니다.

꼬마 은영이가 엄마 은영이가 되어도 조숙한 심장은 늘 무겁기만 하니까요. 그 무게를 일찍 알아버린 그 세부의 소녀는 오늘도 1달러를 거리에서 외치고 있겠지요. 목이 터져라 말입니다.

 

그 후 전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행이 떠나온 사람과 반기는 사람을 모두 웃게 할 수는 없을까요? 그 답을 공정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공정 여행은 유명한 관광지나 화려한 호텔로 안내해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환경을 생각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진짜 마을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홈스테이를 합니다. 빗물을 받아 세수를 했다는 후기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마을 잔치를 함께 준비하면서 정말 즐거웠다고 합니다. 그들과 같이 보낸 시간을 잊지 못한다는 말이 오래오래 가슴 속에 남았습니다. 그야말로 생생한 여행이 아닐까요?

여행은 어느 이에게 휴식이 되고 추억이 됩니다. 또 어느 이에게 일터이자 생계 수단이 됩니다. 전 제 아이에게 그 가치를 선물로 주고 싶습니다. 꼬마 은영이에게도 엄마 은영이에게도 치유의 선물을 주고 싶습니다. 눈물 대신 미소를 한 아름 안고 돌아오는 여행을 꿈꿉니다.

[후략] - 곽은영, 1달러 -

 

1달러를 통해 현재에서 회상, 다시 현재로 되돌아와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글이다. 간결하고 깔끔한 문장이다. 장황한 수사도 없고 화려한 비유는 물론 큰 목소리도 내지 않는다. 여행 중 얻은 1달러 소재를 붙들어서, 주제인 자신의 내면으로 집중하고 있다.

1달러와 조숙한 소녀는 유년의 슬프고 불행했던 자신이다. 신변잡기일 수 있는 이야기를 모두의 시선, 공정여행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승화시키고, 과거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가 화해하는 따뜻한 모습을 통해, 작가는 물론 독자를 위무하고 있다. 수필이 여행의 참다운 가치를 깨우쳐주고,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부양하고 품격 있는 삶의 가치를 실현시켜주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에세이 21 창간 15주년 수필 세미나 발표작

                                                   2019년 9월 19일 (목) 오후 4시

                                                   신촌 케이터틀 본관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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