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박용수>눈물꽃

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
흑흑흑- 우는 소리가 안방을 넘어 거실로 온다.
피식 웃으며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또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오고, 아내는 이번에도 민망해한다. 어느 남녀가 극적으로 만난 포옹 장면이었을까. 사랑하는 이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헤어지는 장면이었을까. 드라마의 어떤 명대사가 아내를 울렸을까. 고개를 거둬들이면서 나는 좀 어이없다는 표정이고 아내도 붉은 눈시울을 다시 화면으로 옮긴다.
눈물이 많은 아내다. 조금 슬픈 이야기를 보거나 들어도 눈물부터 글썽인다. 장모님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부터 울고 간 여자이다. 어찌 통곡했던지 아내도 옆 침대에 누워 영양제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위문 온 사람들이 같은 병실에 누워 있는 웃지 못할 상황에서 모녀를 보고서, 어떤 이는 효녀라고 칭찬을 했고, 어떤 이는 끽끽 입맛을 다셨단다.
우는 사람 보기가 힘들다. 길거리에서 멱살을 잡고 다투는 사람도 드물고, 학교에서도 싸우지 않는다. 그만큼 우는 일이 적어졌다. 장례식장에서도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접객실까지 곡소리가 들리지 않기도 하지만 누가 왔다고 곡하는 이도 없다. 곡비처럼은 아닐지라도 그렇게 애달파하는 이도 없다. 오히려 웃음꽃이 만발하여 당황스러울 때도 많다. 눈물이 사라진 만큼 감정의 깊이가 얕아진 모양이다.
눈물에도 온도가 있다. 통곡의 눈물은 차갑다. 그 속 깊숙이 원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규방 가사는 과장일지라도 너무 슬퍼 죽을 것 같은 독수공방하는 여인의 원이 절절한 글이다. 생때같은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세월호 어머니의 눈물도 한이 서려 있다. 취업 결혼 출산을 끝내 접을 수밖에 없는 젊은이의 눈물도 마찬가지다. 저물녘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애처로운 노을꽃이다.
다행히 세상에는 슬픈 꽃보다 포근하고 따뜻한 꽃이 더 많다. 정든 이웃과 헤어져 고샅을 빠져나오면서 붉히는 눈시울은 따뜻한 심성에서 피는 훈훈한 눈물꽃이다. 그리운 사람이 서로 만나 펄쩍펄쩍 뛰며 흘리는 눈물도 보석같이 반짝이는 사랑의 꽃이다.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곳은 무덕무덕 눈물꽃이 만발한 화원이다. 여기저기서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눈물은 끈적끈적한 피로 피운 피눈물꽃이다. 땅은 남북이 갈라졌을지라도 핏줄은 나눌 수 없다는 민족의 애원이 담긴 눈물이야말로 민족의 불꽃인 셈이다.
눈물은 언제나 흘려도 좋다. 신생아가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첫 울음소리는 아무리 커도 차분한 기분 좋은 소리이고, 으앙으앙 애처러니 흘리는 눈물일지라도 엄마를 찾는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울음꽃이다. 노인들의 한숨 소리뿐인 마을에 온종일 울음을 쏟아내는 울보의 눈물은 또 얼마나 신명 난 꽃이랴. 고생 끝에 성취한 눈물도 아름답다. 해냈다는 자신감, 할 수 있다는 용기는 자신에게 스스로 보내는 축복이자 행복의 꽃일 것이다. 시집가면서 부모님 앞에서 흘린 감사의 눈물도 아름다운 꽃이고, 긴 수술을 끝내고 무사히 나온 환자의 눈물도 찬란한 꽃이며, 이를 바라보는 위로와 격려의 눈물도 향기로운 웃음꽃이다.
눈물은 예고 없이 찾아왔을 때 더 예쁘다. 언제 어떻게 흘려야겠다고 준비하는 눈물은 눈물이 아니다. 바닥의 응어리진 것이 어느 순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눈물이야말로 가식 없이 뭉클한 눈물꽃인지 모른다.
눈물은 아무래도 속이 시원해지도록 바닥까지 내려가 흘려야 제격이다. 말없이 옷소매를 적시는 무어별의 눈물은 아쉽다. 남몰래 어딘가 숨어서 실컷 울고 나야 개운해지는 눈물도 있지만 진짜 눈물꽃은 눈치코치 없이 울음보를 실컷 터트려서 엉엉 소리쳐 울어서 속까지 후련해질 때 가장 화사하다.
사람은 자신이 흘린 눈물만큼 인생의 깊이를 안다고들 한다. 눈물이 없으면 영혼의 무지개가 없다는 인디언 격언처럼, 눈물 없는 사람은 황량한 사막처럼 삭막하다.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촉촉한 가슴이 없어서인지 다가가기 껄끄럽다. 가슴 축축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선물이 눈물이다.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눈물은 마음 밑바탕에서 절로 피어나는 감동의 꽃이다. 그 어떤 가식도 꾸밈도 없는 절박한 언어이다. 천 마디의 말보다도 설득력이 있고, 만 개의 혀보다 호소력이 있는 것이 눈물일 것이다.
차가운 눈물은 분노, 고통, 후회, 회한, 미움의 은유이다. 그러나 진짜 눈물은 직유에 가깝다. 보살핌과 고마움 그리고 사랑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눈물은 언제나 따뜻하다. 눈물을 무기로 아첨하는 이도 없지 않지만 대체로 눈물은 진실을 뿌리로 피는 순결한 꽃이다. 하여 눈물꽃은 한겨울 칼바람에도 활짝 피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진한 향기를 내는 사랑의 꽃이다. 그래서 진정한 눈물꽃이 없는 세상은 웃음꽃보다 눈물꽃이 만발한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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