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나, 그 틉틉한 사랑
박 용 수
왜 쓰는가, 왜 사는가.
사는 것만큼이나 쓰는 것은 진중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허투루 살 수 없는 것처럼 함부로 쓸 수 없다. 쓰는 순간은 가장 잘 치열하게 살고 있는 순간이며, 가장 바르고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바른 삶,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몸부림인지 모른다.
물상의 존재에 의미를 찾고, 시공의 순환 원리를 파악하며, 생명체와 경쟁과 공존을 거듭하면서도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찾는 통찰력을 기르는 인생 공부가 글쓰기이다. 나아가 더 가치 있는 삶의 방향을 탐색하고 내일의 뼈대를 세우는 고귀한 작업이기도 한다.
나는 수필을 좋아한다. 다른 장르를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시나 소설에 관심이 없기보다 수필이 좋아서 다른 장르를 기웃거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수필은 삶과 가장 직결된 문학이다. 지나온 날의 반성 노트이고 현재의 고백록이자 미래의 설계 노트이다.
작가라는 호명은 항상 무겁다. 조금이나마 좋은 글로 보답하고자 이렇게 글을 쓴다.
[탐색하기]
출근하면 아침신문부터 찾는다. 아직도 종이 신문을 꼬박꼬박 본다. 주로 중앙지로 큰 흐름을 읽고, 소소한 사건들은 지방지에서 구석구석 찾는다. 뒤쪽부터 보고 중간에 멈춘다. 앞면을 보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신문보다 생생한 소재공장을 찾기 힘들다. 가슴 따뜻한 서사는 절대 놓치지 않고 꼭 붙든다. 싱싱한 삶의 단어를 이른 아침, 맑은 정신으로 낚는다.
독서를 통해 틈틈이 작가의 생각을 훔친다. 독서는 쓰기의 좋은 표본이다. 작가의 사물을 보는 관점과 삶에 대한 안목을 배운다. 구성과 문장, 문체 호흡 등도 놓치지 않는다. 좋은 문장은 메모해서 객관성을 담보하는 자료로 활용하거나 씨종자로 저장한다.
걷거나 낚시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산책을 할 때도 늘 글거리가 되는지 집게를 내민다. 이건 글감이 되지 않을까. 친구들 이야기도 귀담아듣고, 낚시터에 혼자 앉아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어떻게 삶의 의미를 뽑아낼 수 있을까 고민 한다. 내 일과의 대부분은 재료를 찾는 의도적 행위 곧 탐색에 맞춰져 있다. 문학에서 상상력과 허구가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체험이 아닌 글은 진중하지 못하고 가벼워서 독자를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십상이다. 현실 위에 상상의 꽃을 피우려면 주변을 꼼꼼히 뒤지고 다녀야 한다.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은 눈물의 행사이다. 혹여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글감을 탐색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37주년 기념식 현장을 먼발치서 바라본 적이 있다. 그날 문재인 대통령은 37년 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유족을 뒤따라가 포옹을 해준다. 눈물이 핑 돌았다. 포옹이란 단어가 파릇파릇 생명력 있게 다가왔다. 김소형씨의 사연을 읽고 죽음 속에서도 사랑이 피어나는 포옹의 참다운 의미를 착안하여 ‘포옹연습’을 착상하였다.
작가는 언어 세공사들이다. 진부한 것들을 잘 세공하여 누군가의 가슴에 반짝반짝 빛나도록 영혼에 울림을 주려면 우선 사금 찾는 일부터 부지런해야 한다.
[포착하기]
숲속 나무들이 모두 재목이 될 수 없다. 사람의 사연이나 행위들이 모두 소재나 줄거리가 될 수도 없다. 교감이 중요하다. 그래서 작가들은 낯선 곳에 혼자 걷고 방황하고 배회하면서 글감을 포착하려고 일부러 고행에 나선다.
글쓰기는 내면의 욕망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작가 내면에 막혀 있다가 바람이 봉숭아의 꼬투리를 탁 건들면 툭 터지듯이 그 소재를 통해, 참았던 눈물처럼 시원하게 터진다. 억지로 쓴 글들은 개운하지 않다. 나는 내가 글을 쓴다기보다 글이 나에게 다가와서 쓰는 편이다. 그래서 실생활에서 이야기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더듬이를 움직인다.
사실 글쓰기의 주요 대상은 우리들의 삶 자체이다. 다만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인문학적 요소의 틀로 포착하고 노력한다. 인문학 종교학 사회학 철학 윤리학 심리학 등의 관점으로 세상을 깊게 의미 있게 보려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이런 외적인 요인들을 내가 어떻게 내 삶으로 체화하는가를 글로 직접 보여주려고 한다. 곧 내 삶을 독자가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독자와 가장 효과적인 교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촉수의 끝은 ‘나’에게로 향하고, 내 내면세계에서 포착하려고 한다.
술을 먹고 좀 취해 귀가하는 길이었다. 횟집 어항 속에서 숭어가 삶을 포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뜨끔하여 멈춰 섰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정신을 가다듬고 메모를 하였다. 내 ‘취일몽’은 그렇게 포착하였고 내 심리와 현대인의 심리를 중심으로 써 나갔다.
글은 흥미가 있거나 감동을 주거나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갈등과 사랑과 통찰이 없는 글은 가볍고 독자로부터 외면당한다. 그래서 내 촉수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치화하기 높이 세우고, 늘 세상과 사물 그리고 사람에 주시한다. 마지막에는 나에게서 글이 벗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한다.
[붙들기]
소재는 독특해서 무언가 연상되기보다 그 소재가 어떤 주제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내게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찌개로 끓일 것인지 국거리용으로 쓸 것인지 튀기고 볶아야할지 어느 정도 붙들어야 한다.
성급하게 붓을 잡고 무턱대고 써 나갈 경우 글이 가볍고 천박해질 가능성이 많다. 미숙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충분이 품에 안고 기다리고, 날것이 되지 않도록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익혀야 한다. 국수처럼 조금만 넣었다가 꺼낼 것인지, 돼지고기처럼 퍼런 불로 푹푹 삶아낼 것인지 불 조절에 신경을 쓴다. 암탉이 되어 계란을 품듯 소재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품어본다. 쓰기는 꼭 책상에 앉아 활자화할 때만 하는 일이 아니다. 수시로 얼개를 짜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머릿속으로 직접 쓰기도 한다.
무엇보다 끌고 갈 방향을 고민한다. 작은 소재나 사소한 사건도 사회적 문제로 확대시킬 수 있고, 유용하게 구성하면 역사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어야 알맹이가 된다. 개인적인 작은 경험도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가급적 깊이 파고들어 가치, 성찰 같이 의미화 하여 울림을 줄 방법을 찾는다. 노동문제나 5.18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수필로 확장하려고 노력한다.
독자들이 얻고자 하는 바는 위안이고 평온이며 관심과 연대, 용기와 희망일 것이다. 글이 그런 에너지를 주지 못하면 가치는 반감된다. 독자의 가슴을 과녁삼아 희망, 용기, 사랑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꽂아 넣으려고 활시위를 팽팽히 당긴다.
오래도록 생각하는 깊이 있는 성찰의 과정을 거친 소재라야 비로소 다듬질이 끝난 목재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미완성 수필 함에 넣고 두고두고 살펴본다. 그럼에도 늘 내 요리는 성급하다고 핀잔을 듣는다. 소재와 주제가 뼈와 살처럼 엉겨 붙도록 고르고 벼리고 두드리는 등 머릿속으로 수많은 설계도를 그리는 시간, 내용을 생성하고 다양한 구성을 시도해보는 시간, 문학적 상상력이 발휘되고 발효되도록 기다리는 기간. 내 글쓰기의 핵심 붙들기다.
‘뼈’는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글이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세 번의 겨울을 지켜보며 썼다. 그럼에도 부르주아적 시선이 글에 들어있을까 부끄럽다.
오래 붙들고 있으면 바보도 저절로 안다. 지금 쓰게 될 글이 상투적인 글인지 비난받을 글인지 버려야할 글인지를 조금이나마….
[채색하기]
붙들기가 문단 수준까지 구상하였다면 채색은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작업이다. 문단에서 문장으로 문장에서 어절이나 단어까지 뼈대에 살을 붙이는 표현 문제이다. 뼈대에 맞춰 근육을 만들어 나가는 형상화하는 이 과정에서 작가의 개성이 만발한다.
수필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되 체험 자체가 문학이 될 수 없고,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 글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사찰에서는 단청을 해야 하고, 도회지에서는 도시의 색이 잘 드러나도록 칠해야 한다. 옷 입히기는 글의 주제나 소재에 맞게 짧게 또는 명징하게 상황에 따라 옷을 입힌다.
생각 덩어리인 문단은 전후 관계가 질서 있게 연결되어야 한다. 접속사는 없을수록 좋다. 가능하면 접속사는 쓰지 않는다. 문장은 짧게 쓴다. 그래야 중의적 표현은 물론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때론 기교가 필요한 부분일지라도 비대하게 살이 찌지 않도록 경계한다.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야하고, 가능한 동어반복이 되지 않도록 한다. 부득불 사용한 유의어가 의미를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명심 한다. 가끔 고유어라는 양념을 넣어서 글맛을 살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도려내고 통째 베어낼 날카로운 칼을 곁에 항상 두는 일은 의무다.
내 등단작품 아버지의 배코는 부정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모정을 바탕에 깔아 비교하였고, 쟁기질과 배코 치기 두 중심소재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수정을 한 결과 지그재그로 구성하였다. 의도적으로 가난한 농촌 분위기가 나도록 채색하였다.
강펀치를 날려 한방에 훅 보내는 것이 좋은 표현은 아니다. 어떤 아우성보다 조용히 가슴을 노크하는 표현을 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내 글은 힘이 많이 들어가는 글이다. 소망은 여전히 멀고 험한 곳에 있지만, 따뜻하게 다가가고 부드럽게 말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다듬기]
농부들도 추수가 끝났다고 논을 버리지 않는다. 이삭을 줍고 내년 농사를 위해 논을 보수하고 손질한다. 건축가들도 건축이 끝나면 며칠에 걸쳐서 하자 처리를 한다. 화가들도 붓을 놓기 전까지 종합적으로 마지막 붓질을 한다.
제목은 내용을 잘 포괄하고 있는가. 독자들에게 충분히 호기심을 일으킬 수 있도록 참신한가. 전체적인 짜임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는가. 특히 문단과 문단, 문장과 문장 간에 논리적 비약이 심하지 않은가. 문장 간의 맥락이 잘 연결되고 상호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덜컥 목에 걸리는 문장이나 표현은 없는가. 더 적합한 단어는 없는가. 두루두루 살펴본다.
‘은어의 사랑’은 표현에 초점을 두고 썼다. 일반적 서사에서는 딱딱했는데, 부드러운 문장과 단어만으로 글이 확 살아나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매일 식탁에 건강한 밥과 찬을 올릴 때 재료를 잘 다듬는 것처럼 나도 독자들에게 건강한 영양분 넘치는 글을 진상하려고 전반적으로 글을 정성껏 다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왜 사는가, 왜 쓰는가.
쓰는 것만큼이나 사는 것은 무끈할 수밖에 없다. 허투루 쓸 수 없는 것처럼 함부로 살 수 없다.
매일 밥을 먹듯 작가는 매일 글을 써야 한다. 다작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작가는 사회의 탐색자이고 세상을 가장 냉철하고 정확하게 보는 선지자들이다. 어제와 다른 삶 다른 세상을 매일 발견하고 찾아내니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늘 새로운 글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찰하고 끊임없이 내다보는 자세, 파고드는 삶에서는 매일 새로울 수밖에 없다. 작가가 세상을 앞서 이끌기도 하지만 실상 그런 통찰력 풍부한 안목이 작가를 성장시킨다. 곧 그가 쓴 글이 작가를 키우는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쓰는 순간은 가장 잘 치열하게 사는 순간이며, 가장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바르게살기 위한 나의 처절한 몸부림인지 모른다.
-에세이 21. 2020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