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 2020-10-14 14: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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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창 중에 현숙이를 아느냐고 묻는다. 방금 전화를 받았는데, 고향 동창이라며 무척 반갑게 안부를 묻더란다. 어렵사리 전 근무처를 추적해서 전화번호를 알았다며, 바삐 살다보니 연락을 하지 못했다며 다정하게 이야기하는데, 도통 기억나지 않아 어쩔 줄 몰랐단다.
그녀는 바삐 사느라 통 친구들도 만나지 못했단다. 이제부터라도 서로 의지하고, 정을 나누며 살자고 애틋한 손길을 내밀더란다. 양산지구 사거리에서 음식점을 하는데 친구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뜻도 정중히 전해왔단다. 전화번호까지 받긴 했지만, 미안도 하고 난처하기도 했다며 그녀 전화번호를 건네주면서 혹시 그 동창 기억이 나느냐고 묻는다. 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너를 무척 좋아했던 여자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빙긋 웃어주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금방 떴다. 제법 유명한 밥집이다. 그냥이 아니라 넝쿨째 친구가 굴러들어온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서둘러 단체 연락 방에 그녀 소식을 알렸다.
쉽게 아는 친구가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우린 그녀의 이름을 앞에 두고 혼돈에 빠지고 말았다. 동창 중에 현숙이라는 이름이 여섯이니 일곱이니 설왕설래를 하면서 오랫동안 지하 창고에 묵혀 둔 여러 현숙이란 친구는 모두 다 소환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현숙은 세 명이란 결론을 내렸다.
어쩐 일인지 셋 모두 연락이 끊긴 친구였다. 면사무소 아랫마을 박현숙과 중퇴한 박현숙은 분명했는데, 지금 연락이 온 중장터 현숙이는 박현숙이네 주현숙이네 의견이 달랐다.
결국, 가장 화끈하고 의리 있는 옥숙이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참을 통화하더니 갈수록 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통화했다는 친구 이야기를 주고받고도 합치된 것이 없어 더욱 이상했는지, 친구가 어렵사리 묻는다.
"그러면 혹시 무슨 띠세요?"
우린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상대도 당황했는지 아니면 혼란을 겪고 있는지 한참 주저하더니, 칼칼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넘어온다.
"띠는 무슨 띠? 내년이면 우리가 칠순 아닌가."
순간, 여기저기서 입을 손으로 막으며 픽픽 웃었다.
"혹시 내년에 예순 아니세요."
옥숙이가 우리는 쉰아홉이라며 거듭 나이를 밝혔지만, 그녀는 거기에 아홉을 더한 예순아홉이란다.
"선배님, 저희는 쉰아홉 살, 그러니 10년 후배들입니다."
친구가 정중하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그 선배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결국, 그 중장터 마을에 59살 먹은 우리 동창 박현숙도 주현숙도 없었다. 다만 69살 먹은 박현숙만 있었던 셈이다. 우린 10년 선배에게 5자와 6자의 글자 가지고 오타니 뭐네 장난을 쳤다. 새로운 친구 출현에 부풀어 있었던 우리의 상실감은 결코 적지 않았다.
53년생 박현숙이라는 지문 속에는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가 감춰져 있다. 전란 막바지에 태어난 그녀는 산골짜기만 있는 우리고장에서 근근이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너나없는 이촌 향도의 길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말이 타향살이지 징용과 무슨 다를 바가 있겠는가.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던져진 삶, 청춘, 결혼, 육아 모두 누구나 그랬듯 생존을 위해 악착같이 일만 하고 숱한 세월을 보냈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 살만하다 싶어 뒤돌아보니 어렴풋이 떠올린 것이 고향, 친구 아니었을까.
숨은 그림을 찾듯 때론 연어가 모천을 회귀하듯 과거를 더듬었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았을 터, 희미한 이름,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는데, 정말 그 이름이, 거기에 있었던 때, 그리고 그가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는 어땠을까.
오래도록 가슴에 감춰둔 사람, 남편 때문에, 아이 키우느라 꺼내지 못했을 이름. 가슴속에 꼬깃꼬깃 숨겨둔 사람, 첫사랑 아니었을까. 50여 년 동안 목을 졸라도 죽지 않은 이름, 아니 행여 누가 눈치챌까 봐 몰래몰래 가슴속에 숨겨 키운 사랑. 그렇지만 힘들 때마다 등을 두들겨 준 신앙과 같은 존재….
얼마나 용기를 냈을까. 전화번호를 알았을 때, 번호를 하나하나 눌렀을 때,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또 얼마나 가슴 설렜을까.
걱정된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신념들이 갱이 무너지듯 와르르 무너진 순간, 앞이 안 보였을 것이다. 어쩜 인생을 헛산 느낌은 아니었을까. 딱 한 사람, 그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여태 살아왔는데, 그가 아닌 동명이인의 10년 후배였다니, 그녀가 느꼈을 상실감. 어쩌면 50년대 한국전쟁의 처참한 고통보다 더 아팠을 것이다. 능히 반백 년을 훌쩍 넘게 품고 있던 그리움이 물거품처럼 사라졌을 지금, 이 순간이, 진짜 가슴을 후벼 파는 상실은 아니었을까.
우리들의 수많은 상실보다 선배의 깊은 상실이 눈물처럼 마음에 고인다. 오늘 저녁 현숙 선배의 현숙하지 못한 울음소리, 몰래 훌쩍이는 눈물 소리가 예까지 들려올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