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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삶에 던지는 질문에 의사가 그려낸 인문학적 답


죽음이 삶에 던지는 질문에 의사가 그려낸 인문학적 답

김기철 입력 2016.12.12 18:14 댓글 12


[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3]
죽음이 우리 삶에 던지는 질문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

늙어가는 것은 무엇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다. 머리카락을 잃고, 시력을 잃고, 청력을 잃고, 기억력을 잃고, 친구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렇게 하나씩 잃어가다 결국은 스스로를 잃게 된다.

 나이 먹는 것은 또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더 이상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을 할 수 없게 되고, 쉬엄쉬엄 걷는 산책마저 어렵게 되고,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없게 되고, 책을 읽을 수도 없게 되다 결국은 소멸에 이른다.

 죽음의 공포는 이런 상실에 있지 않을까,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자로 짐작할 뿐이다. 인간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인데, 종교와 과학(의학)이 그것이다.

 종교는 사실 인간이 가진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에 기댄 형이상학으로 죽음 이후에 무한한 세계가 있다는 믿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견디게 한다.

 의학은 종교와 다른 방식으로 죽음의 공포에 맞선다. 바로 삶의 유한성을 과학의 힘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싸움에서 최종 승자는 늘 '죽음'이다.

아툴 가완디 /사진=부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삶의 유한성'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영어 원제 자체가 'Being Mortal'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몇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우선 저자가 여러 면에서 포개진다. 아툴 가완디와 폴 칼라니티 둘 다 인도계로 의사인 아버지를 둔 의사다. 의사가 되는 과정도 비슷하다. 아툴 가완디는 스탠퍼드대학과 옥스퍼드대학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 의대에 들어갔고, 폴 칼라니티는 스탠퍼드대에서 문학과 생물학을 전공한 뒤 영문학 석사를 받았고 캠브리지대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한 다음에 예일대 의학대학원에 진학했다. 두 사람 모두 문학과 철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인간을 탐구하다 아예 생명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두 책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아툴 가완디는 '관찰자'로서 죽음을 바라보지만, 폴 칼라니티는 직접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스스로를 바라본다.

아툴 가완디 /사진=부키
아툴 가완디는 주로 '죽음 앞에 있는 환자에게 의학은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고, 폴 칼라니티는 '우리의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두 책 모두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두 책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가치있는 삶'이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내가 책의 저자라면 사람들의 다양한 죽음을 기록하고 또 논평할 것이다.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동시에 삶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고 했다.

◆죽음이 던지는 질문

 우리 삶의 끝에 놓인 죽음이 인간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또 자신 앞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폴 칼라니티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꼭 생각해 보라"는 담당의사 에마의 말에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면 쉬울 텐데요. 2년이 남았다면 글을 쓸 겁니다. 10년이 남았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어요"라고 답한다.

 죽음까지 남아 있는 시간에 따라 중요한 것이 달라지는 현상을 아툴 가완디는 로라 카스텐슨 교수의 '사회정서적 선택이론'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하는지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가설이다.

 이에 따르면 젊고 건강할 때는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믿는다. 이럴 때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친구를 비롯한 사회적 관계를 넓히는 일에 몰두하면서 성취감, 자아실현 등을 추구한다.

 반면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순간 시야가 축소돼 삶의 초점이 '지금, 여기'로 변하게 된다.

 가완디의 아버지 역시 그랬다. 척수 종양 진단을 받은 후 가완디의 아버지는 삶에 대한 초점이 좁아지고 욕구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 후로 아버지는 손주들을 더 자주 찾아봤고 특별히 시간을 내 인도로 날아가 친척들을 만났으며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을 줄였다."

 그래서 어쩌면 '죽음'이 삶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인간은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완디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이해하는 게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폴 칼라니티와 아내 루시, 그리고 사랑스러운 딸 케이디 /사진=흐름출판
 폴은 예고된 죽음 앞에 무릎꿇지 않고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찾고 그것을 향해 용기 있게 걸어나갔다. 암을 극복하거나 물리치겠다고 허세를 부리지 않고, 미리 계획해둔 미래를 잃어가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구축했다.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그의 마지막 소망은 딸 케이디가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 때까지 살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망조차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그 딸을 위해 남겨놓은 것이다. 그는 책 마지막에 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죽음 앞에서 의사의 역할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이 강해도 1주일에 100시간 이상의 노동을 요구하는 수련의 과정은 그런 소명의식을 희미하게 만든다.

 레지던트 시절 폴은 수술실 복도에서 동료인 마리가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수술에 들어가서 먼저 작은 구멍을 뚫어 내시경 카메라로 암의 전이를 확인한다. 확인 결과 암이 광범위하게 전이됐다고 판단되면 수술을 중단하고 15분 만에 봉합한다. 반대로 수술할 만한 상황이면 수술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되면 9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한다. 연일 계속되는 업무에 쓰러질 지경이었던 마리는 마음 속으로 "너무 피곤해, 하나님 제발, 전이가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실제 전이가 확인되어 환자의 절개 구멍은 봉합되고 수술은 취소됐다. 마리는 수술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깊은 괴로움과 수치심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폴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응급 환자가 들어왔다는 호출을 받는다. 먹던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컴퓨터 옆에 놔두고 응급 환자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응급조치를 시도했지만 그를 살릴 수 없었다. 응급실에서 나와 그에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슬픔의 감정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였다. 사무실로 와 다시 그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얼려 먹는데 수치심이 몰려 온다.

 "가족이 사망한 환자에게 작별인사를 건넬 때 나는 이에 낀 초콜릿 칩을 떼어내며 굉장히 맛있다고 생각했다. 의사로 지낸 짧은 시간 동안 도덕적으로 나아지기는커녕 퇴보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그는 진정으로 환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아툴 가완디는 의학의 발전이 '죽은 자의 역할'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고 아쉬워 한다.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두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아툴 가완디는 현대 의학이 오히려 이런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의학의 힘이라는 게 무척 제한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인정하지 못할 때 생기는 피해를 너무도 많이 목격해 왔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한계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런 인간을 돌보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나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그 한계에 직면하고 분투하는 과정을 도와야 한다. 어떤 때는 병을 고쳐 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연고를 처방해 주는 데 그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그나마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의료진이 개입해 환자로 하여금 희생과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일은 더 큰 삶의 목적을 위한 것일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

폴 칼라니티 /사진=흐름출판
◆의사가 된다는 것

 폴 칼라니티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이었다. 스탠퍼드대학에 입학해 영문학과 생물학을 복수 전공한 폴은 스탠퍼드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는다. 그 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 및 철학 과정을 이수하고 예일대 의대 대학원에 진학해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후 모교인 스탠퍼드대학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문학에서 의학으로 넘어가는 고민의 과정이 책에 담겼다.

 애리조나의 킹맨이라는 사막도시에서 자란 폴에게 어머니는 독서 목록을 가져와 읽게 만든다. 처음에 어머니의 강요로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후 니콜라이 고골,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제인 오스틴, 사르트르,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알베르 카뮈 등 수많은 책을 섭렵한다.

 "책은 잘 다듬어진 렌즈처럼 세계를 새로운 시작으로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그가 문학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학 공부가 깊어지면서 그의 관심은 서서히 철학과 생물학 쪽으로 기운다.

 "나는 언어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의 초자연적인 힘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언어는 고작 몇 센티미터 두께의 두개골에 보호받는 우리의 뇌가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략) 나는 열정, 갈망, 사랑 등 우리가 체험하는 삶의 언어가 신경세포, 소화관, 심장박동의 언어와 연관되는 뭔가 복잡한 방식이 틀림없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학문 분야란 인간의 삶을 특정 방향으로 이해하는 일련의 도구, 즉 어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고유한 도구를 독자에게 쥐어주며 그 어휘를 사용하도록 이끈다. "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몇몇 교수가 내게 인문학부를 영영 떠나기 전에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 학위를 따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나는 케임브리지대학의 과학사&철학 과정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이런 고민의 과정을 거쳐 그는 드디어 의학을 선택한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 답을 찾고 전혀 다른 종류의 숭고함을 발견하며 고통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진지한 생물학적 철학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학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도덕적인 명상은 도덕적인 행동에 비하면 보잘것 없었다."

 아툴 가완디는 자신이 의사가 되는 과정을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먼 길을 돌아 긴 고민의 과정을 거쳐 의사의 길을 선택했음을 그의 커리어가 말해주고 있다. 그는 하버드 의대에 입학하기 전 스탠퍼드대와 옥스포드대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뒤로 밀어붙이는 의학의 힘에 매료돼 뒤늦게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이런 오랜 고민의 과정을 거쳐 폴과 아툴이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들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고민의 과정을 거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 부러웠다. 이런 경로를 밟아서, 이런 고민의 과정을 거쳐서 의사가 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기철 기자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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